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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에 담긴 정

洗心 2009. 7. 31. 16:38

내 나이 23살 때.....

지금 우리 아이들 생각하면 정말 철없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졸업과 동시에 가정 선생으로 부임하게 된 여자고등학교...

교정으로 올라가는 길에  테니스장이 있고  깨끗한 교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아직 화장도 할 줄 몰랐던 단발머리 천방지축 여선생...

열정은 있었으나 실수도 정말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한 일도 비일비재....

그래도  사랑의 매와  학생들이 만들어 준 분필 통을 당연하다는 듯 들고

학생들 앞에서는 위엄 어린 표정을 지으며 군기도 잡고 엄포도 놓았었지...ㅎㅎ

그 후....

세월이 흘러 그 시절 제자들도 어른이 되고 이제 같이 늙어 가게 되었다

며칠 전....

학교 선생으로 있는 제자가  남편이 직접  재배한 옥수수라며 집으로 보내왔는데.....

얼마나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서 보냈는지 열어 보고 그 정성에 울컥 목이 메었다.

금방 따서 삶아 먹어야 맛있다고 택배로 오는 동안 더운 날씨에 시들까 봐

스티노플 박스에다 아이스팩까지 사이에 넣어 포장을 해서 보냈던 것이다.

하나하나 바로 삶아 먹기 좋게 얇은 속껍질만 남기고 까서....

옥수수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얼른 몇 자루를 삶아 봤더니

농사를 어떻게 지었길래 쫄깃쫄깃 여태 살아오면서 먹어 봤던 수많은 옥수수 중에

이렇게 맛있는 옥수수는 정말 처음이었다.

기술도 좋지... 얼마나 정성 들여 길렀으면 이런 맛이 나올까 신기하기만 했다.

 

오래전에 철없던 시절에 잠시 맺었던 인연...

정말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 늙어서 까지 선생 대접을 받아도 되나 반성도 되면서

그 따뜻한  정이 가슴 뿌듯하고 행복했다.

 

 

 

 

 

 

 

 

 

 

 멋진 수염의 옥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