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 돌아 보기

북인도 - 아그라, 시칸드라 (7일)

洗心 2017. 12. 21. 19:00

야무나 강변 산책 후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악바르 왕의 무덤인 시칸드라 탐방

시칸드라는 타지마할의 영감이 된 곳으로 무굴제국의 악바르왕의 무덤이다.

여기서 악바르왕에 대해서 조금 찾아보았다.

 

칭기즈칸의 후손인 무굴족 지도자 바부르(Bābur, 1482~1530)는

1526년 힌두스탄의 통치자를 자처하며 인도에 이슬람 제국인 무굴왕조를 세웠다.

무굴제국은 전성기에 서쪽의 카불에서 동쪽의 벵골만까지,

북쪽의 카슈미르에서 남쪽의 뭄바이까지 뻗어 있었다.

무굴족은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바부르의 손자 악바르(Akbar, 1542~1605)는

농민 3만 명을 폭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도끼로 난도질해 죽였고

심지어 폭도 2000명의 해골로 피라미드를 쌓아 반란을 일으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굴제국의 통치자들은 잔인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면서도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바부르는 문학을 좋아했고 정원 가꾸는 데 열심이었다.

악바르는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문답과 철학적 담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손자인 샤 자한(Shāh Jahān,1592~1666)은 건축에 매혹되었다.

 

무굴제국의 발판을 마련한 사람이 바부르였다면

이 왕조를 대제국의 위치로 끌어올린 사람은 악바르(1542~1605)였다.

그는 무엇보다 군사 책략가였다. 전략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상황판단이 뛰어났고

신속한 기동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지도력 덕분에 무굴제국은 1605년 그가 죽을 때까지 북인도 전 지역을 지배하였고

데칸과 벵골만 및 아라비아 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한편 그는 현명하게도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백성들을 결속시키기 위해서 결혼 정책과

종족 간의 타협을 통해 힌두교의 여러 세력들을 동반자로 흡수하였다.(다음 백과 참조)

이와 같이 악바르는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연 위대한 왕으로 지금도 인도 사람들은

악바르 대제를 훌륭한 제왕으로 추앙하고 있다.

인도영화 '조다 악바르'를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무굴 왕국(1526~1858)의 왕들

1대 왕은 바부르이고 후마윤(2대) 악바르(3대) 자힝기르(4대) 샤자 한(5대) 아우랑제브(6대)

아우랑제브 이후에 이슬람과 힌두교의 분열이 일어나며 외세의 침입까지 받고

혼란과 분열을 반복하다 유럽 열강이 넘보기에 이르렀다. 

 
인도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 받는 악바르 대제의 무덤이 바로 시칸드라이다.

 

입구를 통과하니 넓은 정원이 있었다.

 

 

 

 

 

넓은 정원에는 사슴과 공작들이 여유롭게 놀고 있었다.

 

 

 

 

 

원숭이 가족들이 왔다 갔다. ㅎㅎㅎ

 

 

 

 

 

악바르 대제는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갈등을 없애려고 정략적 결혼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건축물들이 힌두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무굴제국의 건축 양식어 되었다.

 

 

 

 

 

 

 

 

 

명성에 비해 관은 너무 소박하다.

 

 

 

 

 

 

 

 

 

 

 

 

 

 

 

 

 

 

 

 

 

호텔에서 중식

인도 여행의 식사는 대부분 호텔 레스토랑에서 했다.

 

 

 

 

 

점심 먹고 잠시 정원을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