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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플래닛)

고려공양왕릉

洗心 2006. 7. 8. 16:13

고려시대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왕비 순비의 능은 말이 왕릉이지

어느 몰락한 양반집 묘만도 못하게 작고 옹색한 모습이더군요.

조선 태종 16년에 공양군에서 공양왕으로 추존되어 왕릉도

다시 개축한 것인데도 조선왕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홍살문, 정자각 같은 것이 없고

풍파에 심하게 마모가 되어 버린 비석은 그저 둥글고 뭉툭한 돌덩어리로 보일뿐

두 봉분 중간에 조선 고종 때 세운 '고려 공양왕 고릉'이라 새긴 비가

왕릉 임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고려왕릉의 석물과 양식이 왜소하고 소박하기는 하나

아무리 망한 나라의 임금이지만 임금의 무덤이 있고 

그 바로 위에 다른 사람(정씨, 신 씨 집안)의 묘가 있다는 게 이상합니다.

공양왕릉 앞에는 개 모양을 한석수가 있고 무덤 앞에는

연못 하나가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공양왕은 이성계에게 쫓겨나 개성을 빠져 도망을 다니던 중

고양 땅으로 오게 되었는데 날은 저물고 지금의 고양시 식사동에서

노숙을 하다 멀리서 불빛이 보여 찾아가 보니 작은 절이 있더랍니다.

하지만 이 절의 스님은 쫓기는 옛 왕을 도와주다가 변을 당할까 봐

공양왕에게 "저희 절은 인적이 번잡하여 모시기 어려우니 이곳에서 동쪽으로 10리 떨어진

누각에 가 계시면 매일 음식을 갖다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답니다.

그 누각이 있는 곳이  지금의 원당 다락골인데 왕은 절에서 날아온 음식으로

목숨을 연명하였다네요. 그래서 이곳을 식사동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하고요.

얼마 후 왕의 친족들이 공양왕의 행방을 찾아다니던 중 이곳 다락골 일대를 뒤졌으나

왕을 찾을 길 없었는데 평소에 왕이 귀여워하던 삽살개가 연못을 향해 짖다가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빠져 죽더랍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사람들이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니 왕과 왕비가 같이 죽어 있었답니다.

친족들은 왕의 시신을 연못 뒤 야산에 묻었는데

이후부터 이 마을을 다락골에서 왕릉골로 부르게 되었고

공양왕릉 앞에 개 모양의 석상이 있게 되었다 합니다.

 

삼척에도 공양왕릉이 있는데 공양왕이 삼척에서 죽임을 당하고

목을 잘라서 보이고 머리만 이곳에 묻었다는 설도 있고요.ㅠ

망한 나라의 역사는 왜곡되고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아

왜 두 곳에 무덤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네요.

 

붉은 울타리 속의 능이 공양왕과 왕비순 비의 능 그리고

그 뒤는 정 씨와 신 씨의 집안의 묘

바로 앞에 움푹 파인 곳이 전설의 연못이고

멀리서 바라 보이는 능이 공양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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