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로 바라본 풀꽃세상

2006년02월02일 다이어리 본문

추억(플래닛)

2006년02월02일 다이어리

洗心 2006. 2. 2. 12:05

올 겨울 유난히 추웠던 탓에 방콕에만 있었더니

온몸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이었다.

남편도 바쁜 일정 때문에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던 터라

심신이 쇠약해진 듯 동네 낮은 고봉산을 오르면서도 둘은 헉헉거렸다.

며칠 고봉산에서 워밍업을 한 다음 우리는 북한산으로 향했다.

첫날부터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 가장 가까운 코스인 북문으로 해서

원효봉을 갔다 오기로 하고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매표소에서부터 준비운동 삼아 걸어 올라갔다.

 

그늘진 곳에는 간간히 눈이 쌓여 있고

계곡에도 얼음이 언 채였지만 얼음 밑으로는 졸졸졸 물소리가 들렸다.

땅속에서부터 봄이 오고 있다는 소리이리라.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는 경쾌해진 것 같고 길가 나무와 풀들도

끝이 도톰한 것이  날씨만 조금  따뜻해지면 곧 터져 나올 듯 느껴졌다.

 

오랜만에 산을 찾은 두 사람의 발걸음은 절로 신명이 났다.

북문으로 올라가는 등산길로 접어드니 예쁜 오솔길도 있고  

멋진 소나무들이 바위 사이에 아름다운 자태로 서 있었다.

저렇게  바위 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자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그동안의 고행이 눈에 보이는 듯 숙연해졌다.

사람이고 나무고 고생하며 어렵게 자라야  멋진 사람, 멋진 나무가 되나 보다.

 

잠시 상운사를 들릴까 하다 북문으로 바로 올라갔다.

겨울이라 아무도 없고 까마귀만 "까악 까악" 노래하고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성안의 시체를 실어 나갔다는 시구문이 있어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은 섬뜩한 느낌도 있었지만 새까만 까마귀가

후드득 날아가는 모습을 보니 까만 연미복 입은 신사처럼 예쁘다.

사람들이 까마귀 우는 소리를 불길하다 하지만 까마귀 입장에서는

까마귀가 울면 불길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언짢을 것이다.

 

나무 위에 앉아 깍깍거리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우리가 흉내를 내자

까마귀들이 가만히 숨죽이며 듣고 있는 듯했다.

적군인지 아군인지 탐색이라도 하는 듯.....

우리가 이제 가만히 있자 이번에는 까마귀들이 울어 댔다.

신기한 것이 날아가지는 않고 우리가 "까악 까악"하면 저들은 가만히 있고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저들이 "까악 까악" 울었다.

이렇게 까마귀들과 정담을 주고받으며 놀다 원효봉으로 올라가니.......

그리 높지 않지만 의상봉을 시작으로 백운대까지 봉우리들이 둘러섰다.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에 저절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이런 맛에 힘들어도 산을 오르는 것이리라......

 

가지고 간 따끈한 커피를 한잔 하며 아름다운 풍광에 잠시 젖어 있던 우리는

능선을 타고 좀 더 돌아볼까  하는 욕심도 있었지만

그동안 산을 거의 못 왔던 터라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쉽지만 며칠 뒤 좀 더 긴 산행을 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려  내려왔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