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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전 제자들과의 만남

洗心 2008. 2. 25. 18:19

토요일 김천에 가서 하루 자고 왔습니다.

82년에 고3이었던 졸업생들이 동창회를 하면서 초대를 했기 때문이지요.

지금부터 25년 전 그때 가르쳤던 학생들을 만난다니 보고 싶기도 한 반면 두렵기도 했답니다.

엉겁결에 허락은 했지만 잘 늙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할 텐데 자신도 없었고 

그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철없이 선생 노릇 했던 것이 못내 부끄러웠기 때문이지요.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되었다고 다시 연락할까 몇 번을 망설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그 당시 다른 반 담임선생과 같이 가게 되었답니다.

토요일 오후  김천역에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게 되어 어디서 커피나 한 잔 하려고

기웃거리다 하니 어느 빵집 안에서 누군가 활짝 웃으며 문쪽으로 걸어오네요.

" 어머 선생님!~ 어쩜 그대로 세요. 늙지도 않으셨네요. 저와 어디 가면 친구인 줄 알겠어요."

" 아이고 고맙다 그래 너도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네 담박 알아보겠어"

27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와 시공 초월 그때로 돌아가 수다를 한바탕 떨었지요.

그래도 못난 선생에게 녹차라테를 정성껏 만들어 치즈케이크 한 조각과 같이 내 오며

꼭 드시고 가야 한다고 대접하는 제자는 내 눈에 더도 덜도 아닌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답니다.

 

드디어 약속시간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기다리던 제자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면 덥석 안기더군요.

한참을 서로 돌아가며 손을 붙잡고 동동 뛰기도 하고 껴 안기도 하며 정신이 하나도 없도록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지요.

멀리는 서울에서부터 울산 안양 구미등  20여 명의 제자들이 참석한 동창회는 밤 12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학생 시절에 농땡이 말썽쟁이 제자가 지금은 시부모 극진히 모시고 자녀들 교육도 잘 시키는 현모가 되어 있었고,

몇 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도 꿋꿋하게 식당을 하며 딸 둘, 아들 하나 훌륭하게 키워놓은 제자, 

수재에 모범생이었던 제자는 부부교사로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었지요.

이튿날 제자들이 정해준 모텔에서 자고 일어나니 김천 사는 제자 둘이 또 데리러 왔더군요.

아점(아침 겸 점심)을 먹고 역시 제자가 하는 연화지 옆 레스토랑에서 차를 마시고 난 뒤

학교를 둘러보며 달라진 학교 교정에서 추억을 되새기며 사진도 찍었답니다.

고속버스 타고 돌아오려고 터미널에 도착하여  제자들과 고마움의 인사를 나누자니

기어이 제자는 눈물보를 터뜨립니다.

모두 빨간 토끼눈이 되어 한참을 손을 잡고 있다 또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살자 다짐하며 이별식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지요.

23살(7살에 입학했기에)에 시작한 정말 천지도 모르는 새내기 선생이 저지른(?) 실수투성이 교육을 받고

그래도 그 가르침이 좋았다고 말해 주는 제자들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선생님처럼 늙어가고 싶다는 말에는 정말 쥐구멍을 찾고 싶더군요.

 

"고맙다 제자들아

우리 곱게 곱게 늙어가자!

그리고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

 

 김천 연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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