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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Killing Fields

洗心 2009. 9. 4. 10:25

 

1984년 개봉했던 ,롤랑조페 감독의 The Killing Fields

샘 워터스톤, 해잉 S,느고르, 존 말코비치, 줄리언 샌즈가 출연했던 영화.

이번에 캄보디아를 가게 되면서 오래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추억하게 되었다.

전쟁의 참혹함으로 전율케 했던...

엔딩 장면에서 존 레논 이 불렀던  Imagine 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인해 가슴이 더 찡하고 아팠던 영화엿다.

 

주연으로 나왔던 캄보이다 인 해잉 S.느고르(디스플랜 역)는 

아카데미 조연상(영화에서는 주연인것 같은데 조연상을 받았다)

까지 타게 되었는데 영화 홍보차 한국에 왔을때 이렇게 말했다.

"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없지만 공산치하 4년의 쓰라린 체험이 연기 이상의 실습이 된 것 같다.

아카데미상은  나 자신을 위한것이 아니고 우리가족과 참상을 당한 400만 동포에게 주어진

진혼의 트로피이자 공산주의 와 싸우는 모든 자유민들의 영광이다."

그는 이후 몇편의 월남전 영화에 출연하였는데, 안타깝게도 96년 LA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되었다.

크메루 루즈 소행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줄거리를 요약하면.... 

 

"캄보디아, 많은 서구인들에겐 그것은 낙원이요, 또는 하나의 숨겨진 세계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웃 베트남에서 벌어진 전쟁이 이곳으로까지 번졌고, 중립국이었던 캄보디아는 전쟁에 휩쓸리게 되었다.

 1973년, 난 이 보수적인 싸움을 취재하기 위해 뉴욕 타임즈 특파원으로 이곳 캄보디아에 왔다.

그땐 이미 정부군과 공산 크메루즈 반군간의 치열한 격전으로 전국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고 바로 그곳에서

난 내 인생을 바꿔놓은 한 인물, 통역관 디스 프란을 만났다. 프란 덕분에 난 사랑과 동정심을 배웠다..........."

 1973년 8월 7일, 캄보디아(Cambodia). 캄보디아 주재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 특파원인

시드니 쉔버그(Sydney Schanberg: 샘 워터스톤 분)는

 1972년 캄보디아 사태에서 크메르군을 섬멸하기 위해 미국 공군이 니크루움에

잘못 폭격하여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한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캄보디아가 공산주의 크메르 루즈 정권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인

1973년 8월 현지 취재차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도착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것이 알려질까 봐 보도진을 따돌리려 하고 시드니는

뉴욕 타임스지 현지 채용 기자인 캄보디아인 디스 프란(Dith Pran: 행 S. 노어 분)과 함께

어렵게 현지에 가서 참혹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나 상황은 시시각각 캄보디아 정부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이에 위기를 느낀 시드니와 프란 일행은

미국 대사관의 도움을 얻어 가족을 탈출시키고 자신들은 남아서 마지막까지 취재를 한다.

그러다 크메르 루즈군에게 붙잡혀 처형되기 직전 프란의 간곡한 설득과 도움 덕분에

시드니와 다른 서구 기자들은 무사히 풀려난다.

결국 수도 프놈펜이 크메르 루즈군에게 함락되고 궁지에 몰린 시드니와 프란 일행은

프랑스 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나

프랑스 대사관 측은 프란이 캄보디아인이라는 이유로 도움을 거절한다.

대사관 밖으로 쫓겨난 프란은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크메르루즈군에게 붙잡혀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죽지 못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데......

한편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간 시드니는 먼저 도착한 프란의 가족을 보살피는 한편

프란의 소재 파악 및 구출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허사다.

그 동안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온갖 고초를 겪던 프란은 그곳 수용소에 있는 지식인 출신

크메르 루즈군 장교 파트의 아들을 돌봐주는 일을 맡아 하다가

그 체제에 회의를 느낀 파트의 도움으로 마침내 그 지긋지긋한 수용소를 탈출하여 킬링 필즈,

즉 '죽음의 들판'을 지나 제3국인 타이의 난민촌에 도착한다.

1979년 10월 9일 마침내 디스프란과 시드니의 극적인 재회가 이뤄지고

바로 이때 평화를 갈구하는 존 레논의 "Imagie"이 은은히 흐른다.

그후....
디스 프란과 시드니 쉔버그는 미국으로 가서 그리운 가족들을 만났다.

그리고 현재는 쉔버그가 칼럼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뉴욕 타임즈지에서 사진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학살(Cambodia's Torment)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태국 국경 근처 난민 수용소들은 킬링필드의 어린이들로 넘치고 있다.

 

 

 

 

 

 

 

 

 

 

캄보디아의 아픈 과거는 여러가지 면에서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물론 1975년~ 1979년까지 캄보디아의 군벌 폴 포트(샐로스 사르가 본명)란

지도자의 엄청난 과오로 인해 저질러진 만행이긴 하지만

 크메르루즈군이 200만명 이상 학살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그 중에는

80만명이상이 미군의 폭격으로 인한 사망이었고

크메르루즈군의 숙청을 하는 과정에서 30만명, 그후 서방의 고립정책으로 인한

기아와 질병으로 80만명이상 사망했다고 하니

캄보디아의 비극에는 미국이 큰 역할을 한셈이이다.

 

https://youtu.be/1DeDvv05G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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