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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가장 좋은시

洗心 2006. 1. 2. 20:58

시인 평론가 120명이 뽑은 '지난해의 가장 좋은 시'로
문태준 시인의 '가자미'가 1위로 뽑혔다고 하네요.

이 시는 지난해 '현대시학'9월호에 실렸다는데
문단에서 문 시인의 인기가 상당한 모양입니다.

'가재미'는 가자미의 경상 방언이지요.
저는 시 첫 구절에 '김천 의료원'이란 말이 나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는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 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 "가자미 눈은 원래 떨어져 있다가 나중에 한쪽으로 몰린다고 한다
 그게 늙는 것일 수도 있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라고 시인이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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