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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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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心 2006. 5. 28. 21:04
 봄이 무르익어 가는  4월 말경이면 여기저기 쉼터에는, 연보랏빛 아름다운 꽃을 수없이 주렁주렁 매다는 등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꽃이 지고 나면 덩굴을 뻗고 아카시나무 비슷한 짙푸른 잎을 잔뜩 펼쳐 한 여름의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다. 이어서 매달리는 보드라운 털로 덮인 콩 꼬투리 모양의 열매는 너무 짙푸른 등나무 잎사귀의 느낌을 부드럽게 해주는 악센트로서 나무의 품위를 높여준다. 콩과 식물이라 비료기가 없어도 크게 투정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잘 자라주는 것도 이 나무가 사랑받은 이유 중의 하나다. 이렇게 등나무는 예쁜 꽃으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하며 쉼터의 단골손님으로 친숙한 나무다.

그러나 자람의 방식은 사람들의 눈에 거슬린다. 등나무는 주위의 다른 나무들과 피나는 경쟁을 하여 삶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손쉽게 다른 나무의 등걸을 감거나 타고 올라가 어렵게 확보해 놓은 광합성의 공간을 혼자 점령해버린다. 칡도 마찬가지로서 선의의 경쟁에 길들어 있는 숲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사이의 다툼을 갈등(葛藤)으로 비교하기도 한다. 옛 조선조의 선비들은 등나무의 이와 같은 특성을 대단히 못마땅해 하였다. 중종32년(1537) 홍문관 김광진 등이 올린 상소문에 ‘대체로 소인들은 등나무 덩굴과 같아서 반드시 다른 물건에 의지해야만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하여 가장 멸시하던 소인배와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갈등을 빚는 나무이던 소인배의 나무이던 관념적인 비유일 뿐이고 등나무만큼 쓰임새가 많은 나무도 없다. 알맞게 자란 등나무 줄기는 지팡이 재료로 적합하고 덩굴은 바구니를 비롯한 우리의 옛 생활도구를 만들었다. 껍질은 매우 질겨 종이의 원료가 되었다. 부산 범어사 앞에는 등나무 군락이 있는데, 이는 스님들이 종이를 만들기 위하여 가꾸고 보호한 흔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외 껍질은 새끼를 꼬거나 키를 만드는 데도 쓰였다.

등나무 이야기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은 등가구에 쓰이는 ‘등나무’이다. 이 나무는 열대지방에 자라는 rattan이라는 나무로서 실제 등나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쉽게 말하여 대나무와 가까운 집안 사이인데 속이 꽉 차있고 거의 덩굴처럼 수 십 미터씩 길게 자라는 것이 대나무와 차이점이다. 가구를 만들기 위하여 일찍부터 수입하여 사용하던 일본인들은 이 나무를 ‘籐’이라고 하였다. 수입상들이 藤과 따로 구분하지 않고 그대로 등가구라고 한 탓에 진짜 등나무와 혼동이 생겼다.

경주시 건곡면 오류리 천연기념물 89호는 팽나무에 등나무가 뒤 엉켜있다. 여기에 알려진 전설이 애처롭다. 신라시대에 이 마을에는 두 자매가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좋아하던 옆집의 청년이 전쟁터에 나갔는데, 어느 날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함께 마을 앞 연못에 몸을 던져버렸다. 연못가에는 등나무 두 그루가 자라기 시작하였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죽었다던 그 청년은 훌륭한 화랑이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두 자매의 사연을 듣고 괴로워하던 그 청년도 연못에 뛰어 들어버렸다. 다음해가 되자 두 그루의 등나무 옆에 타고 올라갈 수 있는 한 그루의 팽나무가 갑자기 쑥 쑥 자라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굵은 팽나무에 등나무 덩굴이 걸쳐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등나무의 사랑이 너무 진한 탓인지,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팽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비실비실한다. 최근 문화재청에서는 철제 지주를 세워 팽나무로부터 강제로 등나무 줄기를 떼어 놓았다.

 

** 박상진교수님이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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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화둥둥의 서랍속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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