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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의 제일경 '竹西樓'

洗心 2009. 6. 23. 14:21

이 건물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 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 말이며,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2칸이지만 원래 앞면이 5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도 천장의 구조로 보아 원래 다른 형태의 지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지만 재료 형태는 다른 양식을 응용한 부분이 있다.

또한 기둥을 자연암반의 높이에 맞춰 직접 세운 점도 특이하다.
이 누각에는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걸려 있다.

그중 ‘제일 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에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 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 37년(1711)에 이성조가 썼으며

‘해선 유희 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3년(1837)에 이규헌이 쓴 것이다.

 

 

 

 

자연암반의 높이에 맞춰 세운 기둥들

 

 

 

 

 

 

 

 

 죽서루에서 내려다 본 오십천

 

금실 좋은 친정 여동생 부부

 

용문 바위

신라 30대 문무왕이 사후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 바위이다. 그 후 용문 바위는 아름다움과 장수, 다복의 기원 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용문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었다.

 

 

 

몇 년 전 영화 '외출'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정문 앞 건너 큰 석류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어딜 가나 꽃과 나무부터 눈에 들어오는  현상.... 이것도  병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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