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로 바라본 풀꽃세상

서유럽 여행- 포로로마노와 콜로세움 본문

남의 땅 돌아 보기

서유럽 여행- 포로로마노와 콜로세움

洗心 2010. 9. 3. 18:17

포로로마노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본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

1870년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영웅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를 기념하는 건물인데

이 하얀색의 웅장한 건물을 이탈리아 사람들은 '웨딩 케이크'라고 비꼬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 아래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어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꽃을 경비병이 지키고 있다 한다.

웅장한 건물장식과 여기서 바라다보는 전망이 아름다운데 특히 노을 지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한다.

 

 

차중샷!~ 차유리 때문에 사진이 파르스름..... 

 

 

포로로마노.....

로마에는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데 그중에서도 역사성, 스케일로 본다면 포로로마노가 아닐까

현재는 폐허처럼 흩어진 돌덩이와 기둥 몇 개만 남아 있지만 기원 전후로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의 중심이었다.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에 의해 로마가 건설되었던 기원전 753년, 로마는 6개의 언덕 위에 보잘것없는 움막 촌이었고

수학과 철학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대가 낮아 비만 오면 물이 넘쳐나는 포럼 지역에 그리스와 에트투리아의 피를 물려받은 로마 5대 왕 타르퀴니우스가

클로이 카 막시마 라 불리는  하수도 시설을 만들어 고인 물을 티베르 강으로 흐르게 하고

그 위에 돌을 깔아 광장을 만들었다. 이것이 포로 로마노(로마 공회장)의 시초가 되었다

그 후 광장 위에 신전, 재판소, 시장, 의회 등 각종 공공시설이 세워지고 2천5백 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는 하수도시설이 기원후 100만이라는 세계도시로 번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포로로마노의 로마 시민생활은 처음에는 야외에서 이루어졌지만 기원전 2세기경 거대한 실내공간인 바실리카(공회당)가

만들어졌고 이때부터 공회당은 종교, 정치, 행정, 사법기관이 집중되어 있는 중심가가 되었다.

그 후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앞세우기 위해 웅장한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고 자신들의

건축물로 자신을 홍보하는 대중 매체로 사용하였다.

아무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부르트스에게 암살되기 전까지 포로로마노의 영역을 더 확대하였고

로마가 공화정에서 황제의 제국으로 바뀌면서 포로로마노의 화려함은 극치에 다다랐다

더 자세한 역사는 인터넷 바다를 헤엄치시길......

 

왼쪽 기둥만 남아 있는 것은 새턴 신전(Tempio de Seturno)

농업의 신인 씨투르누스를 모시던 곳.

로마시대에는 매우 중요한 건물이었다고 한다.

신전 위에는 '로마 원로원과 서민들'이라는 라틴어가 쓰여 있다.

 

 

 

 

 

 

세티미오 세베루스의 개선문

포로로마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아치로 발굴 당시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세베루스의 즉위 10주년을 기념해 203년에 세워진 것.

 

 

조각들이 많이 뭉개진 모습이지만 약 2000년 전에 세워진 건축물이라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왜 평생을 바쳐 로마를 이야기했는지 알 것 같다.

 

 

 

 

 

 

 

 

 

 

 

 

 

 

 

 

 

 

 

 

 

 

 

 

베스타 신전

4세기 무렵 세워진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신성하고 아름다운 신전.

지금의 모습은 1930년 부분적으로 재건한 것이다.

불의 여신 베스타를 모시던 곳으로 6명의 처녀가 베스타의 신성한 불꽃을 지키고 있었다.

이들을 베스탈이라 불렀는데 만일 불씨를 꺼뜨리면 즉시 벌을 받고 쫓겨났다고 한다.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에 만난 풍경

가로수로 소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나무들의 모양을 독특하게 만들어 놓았다.

 

 

 

 

 

 

 

정면으로 보이는 문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이벌인 막센티우스를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물리친 것을 기념 하한 승리의 개선문으로

315년에 세웠다. 높이 21m의 개선문 벽에는 그의 업적과 전쟁 장면을 새긴 부조가 있다.

황제는 하나님의 계시로 승리했다고 했지만 실제로 이 개선문과 기독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개선문은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개선문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말을 묶어 두는 곳이 아닌가 짐작된다. 

 

 

콜로세움은 로마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이다.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네로의 궁전터였던 도무스 아우레아가 있는 늪지대에 세운 것으로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거대하다'는 뜻의 콜로 살레(Colossale)에서 유래했고

정식 명칭은 플라비오 원형극장이다. 바로 옆에 거대한 네로 동상이 있었다고 한다.

둘레 527m 높이 48에 이르는 거대한 극장인데 8년이란 짧은 기간에 지었다니 로마인의 건축 기술이 놀랍다.

콜로세움에서는 검투사나 맹수뿐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이 순교해 기독교의 대표적인 성지로 꼽히기도 한다.

 

 

 

 

지금의 콜로세움은 마치 반동강 난 것  같은데

이것은 지진의 영향으로 콜로세움의 잔해는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왕궁, 다리,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자재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후에 기독교 성지로 지정되면서 교황령에 의해 복원돼 지금에 이른다.

 

 

 

 

 콜로세움 내부로 들어갔다 나오면 다음 일정이 어렵다고 밖에서 보고 굿바이!~ㅠ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이길로 계속 간다면 아피아 가도로 해서 이집트까지 갈 수 있을까.....

래스 피기의 '로마의 소나무'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저 멀리서 은빛 투구를 한 로마 병사들이

승리의 북소리에 맞춰 걸어오는 상상을 해 보았다.

 

중국은 성벽을 쌓았고 로마는 길을 만들었다 한다.

길을 만든 로마는 그 길로 인해 로마가 도리어 정복될 수도 있겠지만

왕래할 수 있는 소통의 길을 열어 놓은 것으로

정복한 나라의 모든 문물을 수용하고 받아 들일수 있어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1000여 년 동안 번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흥분된 마음을 가리 앉히며 호텔로 돌아오니 어둠이 깔려 있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