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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 돌아 보기

서유럽 여행 -- 루브르 박물관

洗心 2011. 1. 9. 17:43

이제 10일째 여행도 막바지에 도달하였다.

 

로마와 마찬가지로 파리를 이틀 동안 다 돌아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루브르 박물관만 하더라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한 작품당 1분씩 관람을 한다 해도 1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225개의 방에 30여 만점의 작품들로 구성된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원래는 파리를 방어하기 위해 13세기에 세운 요새였는데 샤를 5세가 거처하면서 왕궁이 됐고

프랑수와 1세 때 왕실 소유 미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엄청난 규모의 궁전이 박물관으로 바뀌면서 나폴레옹은 원정국에서 약탈한 예술품으로 이 곳을 채웠고

동시에 해외 예술품들을 대대적으로 매입하였다.

그 덕분에 다양한 국적의 예술품들로 루브르 창고에 가득 메웠고 계몽사상가의 주장에 따라 일반에게 공개되기에 이른다.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는 중국출신 미국인 I.M. 페어가 디자인하여

1989년에 세웠는데 루브르의 고풍스러움을 헤친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고전과 현대를 절묘하게 융합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박물관 으로 들어가면 유리로 만든 피라미드가 눈에 가득 들어온다.

 

 

 

 

 

 

 

 

 

 

 

 

 

 

 

 

 

 

 

이렇게 장난도 치며 여유를 부려 보고....

 

 

 

 

 

 

 

루이 14세의 기마상

 

 

 

 

 

 

 

 

 

 

 

박물관은 유리 피라미드 속으로 들어가면 입구가 나온다.

 

 

 

 

 

 

 

 

 

 

 

 

 

 

 

나선형 계단 가운데는 엘리베이터여서 위에서 보면 타고 있는 사람들이 그대로 보인다.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파리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고 후에 왕궁으로 사용하였는데

그 당시 모습 그대로 지하에 남아 있다.

 

 

 

 

 

 

아테나 여신

머리에 쓴 투구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가 받았던 그 청동투구랑 똑같다.

투구는 손기정 선수에게 바로 전달이 되지 않고 베를린 박물관에 보관되었다가

1986년 반환되어 지금은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수많은 조각품들

일일이 다 볼 수가 없다.

 

 

 

 

 

 

유명한 조각과 그림 앞에는 여지없이 많은 관람객들이 모여 있다.

비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美와 풍요의 여신으로 비너스란 말은 그리스어 아프로디테의 로마식 이름이다.

그리스어로 아프 로스(aphros)는 '거품'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프로디테는 우라노스(하늘)의 아들 크로노스가

아버지의 생식기(生殖器)를 잘라 바다에 던진 데서 생겨난 하얀 거품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4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밀로 섬에서 발견될 당시 하체와 몸통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다.

그러나 고대 비너스 조각 중 머리 부분이 완벽하게 붙어 있는 조각품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한다.

그런데 복원을 하면서 팔은 왜 복원을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팔이 없는 상태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팔을 만들어 붙였을 때 비너스의 신비로움이 깨어 질까 두려워

그대로 두기로 했다고 한다.

비너스상은 수학적인 질서 '황금비율'로 만들어져 실제의 인간의 몸매로는

절대 불가능한 팔등신의 이상적인 미를 자랑하고 있다.

 

 

비너스는 앞뒤, 좌우 어디서 봐도 완벽하게 아름답다.

 

 

 

 

 

 

금방이라도 날 듯한 승리의 여신 니케 상

우리에게는 나이키로 잘 알려져 있는데 나이키는 니케(NIKE)의 영어식 발음이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뱃머리에서

니케 상을 재현해서 더 유명한 조각품이 되었다.

 

 

 

 

 

바로 이 장면..... ㅎㅎ

 

그리스 신화를 알면 그림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될 텐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긴 했지만 읽은 지 오래되기도 했고 그림과 바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도슨트의 설명을 천천히 들으며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베르사유 궁전에서 보았던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이 루브르 박물관에도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총 4점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중 2점이 완성되었고 

베르사유 궁전과 루브르 박물관에 각각 걸려 있다.

나폴레옹의 명을 받아 1804년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있었던 황제 대관식을 직접 보며 스케치한 뒤 그렸는데

나폴레옹은 교황이 자신의 머리에 황제관을 씌워주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직접 받아 들고서 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얹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자신이 황제의 관을 쓴 뒤 부인 조세핀에게 관을 씌워주는 장면인데

조세핀의 머리 위에는 또 다른 관을 이미 쓰고 있다.

거대한 집단 초상화로 구상된 이 작품은 100명 이상의 실재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재미있는 것은 당시 나폴레옹 황제와 사이가 나빴던 영국 대사는 그림에서 제외되었고

화면 정면 별실로 만들어진 장소에는 이 행사에 불참한 나폴레옹 어머니와 가족들이 보이는데

나폴레옹의 부탁으로 그려 넣은 것이다.

나폴레옹은 루이 16세의 계승자이지만 부패한 부르봉 왕조가 아닌

위대한 로마 제국의 대를 이은 샤를마뉴 황제의 계승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대관식을 나폴레옹의 지시 아래 화려하게 거행하게 되었는데

나풀 레옹의 왕관을 보면 고대 올림필 경기의 영웅들이나

시이저 같은 로마제국의 대황제들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프랑스 왕들의 전통적인 청색과 황금색의 대관식 외투를 선택하지 않고

로마제국의 원로원 의원들이 이용하던 토가(Toga)를 입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복장을 살펴보면 역시 고대 신화 속의 여신들을 연상케 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인물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41세의 이혼녀와 결혼하는 아들 나폴레옹이 못 마땅해서 참석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2층 가운데 앉아 있고

교황 역시 참석은 했지만 십자가만 애꿎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나폴레옹 어머니가 앉아 있는 단상 바로 위층에 다비드 본인의 모습도 보인다.

왼쪽에서 두 번째 화판을 들고 있는 사람이 다비드이다.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그림과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나폴레옹의 다섯 여동생 중 폴린(왼쪽 앞의 여인들 중 두 번째)을 다비드가 사랑을 하였는데 

베르사유 궁전의 그림에는 그녀만 붉은 옷을 걸치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나폴레옹이 알고 반대하여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래 그림은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그림이다.

위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아래 다섯 여인중 왼쪽에서 두 번째 여인만

핑크빛 드레스를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근엄한 대관식의 분위기와 달리 어린 수사는

앞의 귀족이 들고 있는 칼에 정신이 팔린 듯 만지작 거리고 있다.

 

 

 

역시 젊은 수사도 향료가 든 항아리만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다.

 

 

 

 

 

 

 

 

 

앵그르 작 그랑드 오달리스크

오달리스크(Odalisque)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궁정 하녀,

‘오달릭 odalik’을 프랑스식으로 읽은 말이다.

그녀들은 후궁의 시중을 들뿐이었지만 이슬람 세계에 대한 상상력으로

19세기 유럽인들의 환상 속에서 오달리스크는

술탄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금단의 구역 하렘에서 제왕의 쾌락을 위해

봉사하는 아름다운 여자 노예로 변모하였다.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당시 많은 비난을 받았자만

머나먼 동방의 땅 오리엔트 문명에 대한 유럽인들의

복합적인 시선을 잘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작품 속의 여인처럼 다리를 한번 꼬아 보시라.... 절대 불가능한 포즈이다. ㅎㅎ

 

 

이 곳은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대 화랑이다.

 

 

이 곳에는 바로 그 유명한 '모나리자'가 걸려 있다.

생각보다 아주 작은 작품은 유리관 속에 보관되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가까이에서 보려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거나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가 볼 수밖에 없다.

 

 

구도와 원근법의 측면으로 보면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다.

뒤의 배경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되어 있고 공기 원근법을 사용해 계곡 사이의 길과 다리가

푸르스름한 빛에 싸여 모델과 상당한 거리감을 나타내고 있다.

레오나르 다빈치는 손가락으로 윤곽선을 지워 마무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성스럽고 신비한 미소를 창조하였다.

 

 

그림 그림들......

짧은 시간에 많은 그림을 보다 보니 나중에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파울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잔치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 중에서 가장 큰 작품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첫 번째 기적을 행한 장소 가나의 혼인잔치를 표현한 작품으로 등장인물이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베네딕토 회 수도원인 산 조르지오 마조레 식당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하였는데

파울로 베로네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식탁 중앙에 그려 넣으면서 최후의 만찬임을 암시하였다.

예수의 머리 위로 하인들이 잔치에 쓸 고기를 자르고 있는 모습은 후에 있을 예수의 고난을 상징한다.

화면 오른쪽 맨 앞에 노란 옷을 입은 노예가 손님을 위해 물병을 따르고 있고 그 옆에 남자가 그것을 보고 놀라고 있다.

물병에서 나온 것은 포도주이다. 이 장면이 바로 가나의 기적을 나타낸다.

그리고 화면 중앙에 있는 4중주 음악가들은 당시 베네치아의 유명한 화가들이다.

음악가들 사이에 놓여 있는 모래시계는

물질적인 쾌락은 순간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외젠느 들라크르와 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느 들라크르와 의 '사르다나 팔리의 죽음'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상'

뒤틀린 몸의 근육이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역시 미켈란젤로의 '죽어 가는 노예상'

난 왜 저 얼굴 표정이 죽어가는 표정이 아니라 에로틱하게 보일까 포즈까지.... ㅎㅎ

죽어 가는 노예의 얼굴표정이 평온해 보이는 것은 체념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예술품의 홍수 세례를 받고 밖으로 나오니

 

 

 

루브르 박물관 바로 앞에는 카루젤 개선문이 있었다.

붉은 대리석으로 유명하다.

 

 

 

젊은이들의 기발한 포즈로 사진 찍는 모습들을 구경하다 하니 우리 아들이 생각나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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