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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만추(晚秋 Late Autumn)

洗心 2011. 2. 25. 15:37

 

 

 

쓸쓸한... 너무도 쓸쓸한 영화 만추를 친구랑 봤습니다.

김태용 감독에 최근 연속극 <시크릿가든>에서 한껏 주가를 올렸던 현빈과 <색. 계>의 탕웨이가 주연을 맡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잘 아시다시피 1966년에 이만희 감독이 만든 동명 영화의 리메이크 작이지요.

그 후 일본의 사이토 코이치 감독이 1972년에 만든 <약속>, 김기영 감독이 1975년에 만든 <육체의 약속>,

그리고 김수용 감독이 1981년에 만든 <만추>에 이어 네 번째라고 합니다.

신성일 씨가 주연으로 나왔던 원작은 필름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지금 남아 있지 않아

아마 대부분 김수용 감독의 1981년작 만추를 많이 기억하고 계실 거예요.

김혜자, 정동환 씨가 주인공으로 나왔지요.

감옥에서 나온 여자가 처음 본 낯선 남자 더구나 연하의 남자와 연애를 한다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내용의 영화였어요.

김수용 감독의 ' 만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비교하긴 무리가 있지만

김혜자. 정동환 씨 두 사람 다 연기파 배우였던지라 꽤 잘된 영화로 평가받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낙엽이 떨어져 바람에 몰려다니는 쓸쓸한 늦가을 풍경과 이루어질 수 없는 

중년 남녀의 슬픈 사랑이야기로 가을이 되면 이 영화가 가끔씩 회자되곤 하였지요.

그리나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는 영화 배경을 미국으로 가져갔습니다.

더구나 여주인공은 중국인.... 색. 계에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씬까지 멋지게 연기한 탕웨이입니다.

(사실 난 색. 계에서 순수함과 섹시함이 공존하는 탕웨이의 쓸쓸한 눈빛에 반했기에 

이 영화가 더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얼른 생각할 때는 낯선 배경에 한국인, 중국인의 만남으로 이질감을 느낄 것 같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런 낯선 배경이나 인종의 차이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더군요.

그냥 쓸쓸하고 공허한 사랑만이 보였습니다.

시멘트 빌딩 사이로 안개가 스멀스멀 돌아다니는 황량한 도심과 끝없는 벌판의 고속도로

그리고 휑한 휴게소 풍경...

두 남녀의 어긋난 슬픈 사랑이 가슴 아파서 끝나고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지지 않았습니다.

나만 그런가 하고 옆 친구를 보니 역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영화 내용으로 보면 싱거울 정도의 간단한 스토리, 3일 동안 특별휴가를 받은 여주인공의 짧은 여정일 뿐인데

그저 허허로운 마음이 중년 여인들의 가슴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할까요.

요즘의 빠르게 전개되는 영화를 봐 오다 오랜만에 느리게 전개되는 영화를 보니

중간에 하품도 좀 나고 졸리기까지 했지만

다 보고 나서 찐한 여운이 남는 걸 보니 잘 만든 영화는 맞는 것 같습니다.

 

줄거린 대충 이렇습니다.

수인번호 2537번 애나. 7년 째 수감 중, 어머니의 부고로 3일 간의 휴가가 허락됩니다.

장례식에 가기 위해 탄 시애틀행 버스, 쫓기듯 차에 탄 훈이 차비를 빌리고.....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그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중입니다.

 

 


“나랑 만나서 즐겁지 않은 손님은 처음이니까, 할인해 줄게요. 오늘 하루.”

..........


훈은 돈을 갚고 찾아가겠다며 억지로 시계를 채워주지만 애나는 무뚝뚝하게 돌아섭니다.

 

 

 

7년 만에 만난 가족도 시애틀의 거리도, 자기만 빼놓고 모든 것이 변해 버린 것 같아 낯설기만 한 애나.

돌아가 버릴까? 발길을 돌린 터미널에서 훈을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장난처럼 시작된 둘의 하루. 시애틀을 잘 아는 척 안내하는 훈과 함께, 애나는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끼지요.

 

 
“2537번, 지금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름도 몰랐던 애나와 훈. 호기심이던 훈의 눈빛이 진지해지고 표정 없던 애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를 때쯤,

누군가 훈을 찾아오고 애나가 돌아가야 할 시간도 다가오는데...

 

 

국적도, 미국에 온 이유도, 살아온 배경까지. 모든 것이 다른 애나와 훈은 시애틀행 버스에서 처음 만나지만

애나는 훈에게 무표정하고 반응 없는 중국 여자, 애나에게 훈은 귀찮게 말을 거는 실없는 한국 남자일 뿐입니다.

 

애나......

그녀는 7년 전 남편을 살해합니다. 결혼 전 그녀는 오빠의 친구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떠났고 애나는 남편과 결혼을 했지요.

결혼 후 오빠 친구는 다시 돌아왔고 애나와 만났고 사랑하니까 함께 떠나자 합니다.

그걸 남편이 알게 되고 애나를 두들겨 팹니다.

그 과정에서 남편을 살해하게 되어 중형을 선고받지만 그에게 피해가 돌아갈까 봐

두 사람의 관계가 노출될만한 증거물들은 없애 버리죠.

그러나 7년 만에 돌아와 어머니 장례식에서 오빠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그 사이 결혼을 해서 부인과 같이 왔습니다.

훈은 애나의 장례식에 꽃을 안고 갑자기 나타나 애나의 애인 역할을 합니다.

옛 애인이었던 오빠 친구는 질투심인지 아님 양아치 같은 남자를 애인이라 하니

염려스러워인지 모르지만...(내가 보기엔 질투심...)

암튼 장례식 후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신경전을 벌이던 두 사람은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때 애나가 화를 내며 훈을 나무라자 훈은 이렇게 변명합니다.

" 저 놈이 내 스푼을 사용하잖아!~~" ㅋㅋㅋ 모두들 뜨악한 표정들!~~~

 

그리고 훈.....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돈을 받고 서비스하는 일을 합니다.

손님 중 마피아(?) 조직의 보스를 남편으로 둔 부인이 있는데 아내가 훈을 좋아하는걸 안 보스는

훈을 잡아 죽이겠다고 찾아다닙니다.

그러던 중 그 부인은 몰래 훈을 찾아와 돈을 지불하고 같이 떠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훈은 거절하고 그녀를 호텔까지 데려다주는데 그다음 날 보스 아내는 호텔에서 죽은 채 발견됩니다.

끝내 훈을 찾아낸 보스는 호텔에서 발견된 부인의 피 묻은 가방을 건네주며

"경찰이 곧 너를 잡으러 올 것이다. 경찰이 잡아가기 전에 너란 놈이 어떤 놈인지 보고 싶었다" 하며 갑니다.

 

7년 만에 만난 가족들 때문에 더욱 외로워진 애나는 그냥 감옥으로 그냥 돌아갈까 했는데 다시 만난 훈에게서

가족도 주지 못 한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못 알아들으면서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그 덕에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고 털어 낼 용기를 냅니다.

훈과의 하루로 인해 인생을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 것 같은 애나.

감옥으로 돌아가는 버스...

둘은 동행을 하며 사랑이란 단어가 두 가슴에 새겨질 즈음.....

어느 휴게소에서 홀연히 훈은 사라집니다. 멀리 경찰 사이렌 소리만 왱왱거리고.....

 

2년 후.....

애나는 출소하여 그 휴게소 창가에 앉아  커피를 앞에 놓고 가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 기다립니다.

달그락....

찻잔에 스푼 부딪히는 소리만 조용히 울립니다. 

 

<만추>는 찰나의 기억이 평생 이어질 수도 있음을, 하루에 불과했더라도 그 사랑을 만나기 전과 후,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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