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로 바라본 풀꽃세상

북인도 - 아그라, 타지마할(7일) 본문

남의 땅 돌아 보기

북인도 - 아그라, 타지마할(7일)

洗心 2017. 12. 22. 02:41

인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물은 타지마할일 것이다.

이 놀라운 건축물을 이야기하려면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였던 샤 자한과

그의 아내 몸타즈 마할의 사랑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샤 자한은 시장에서 장신구를 팔고 있던 열아홉 살의 처녀 바누 비감을 보고 한눈에 반해 황비로 맞았다.

그녀에게 '궁전의 꽃'이라는 의미가 담긴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뭄타즈 마할은 샤 자한의 두번째 부인이며 황제의 하렘에는 5000명의 후궁이 있었지만

샤 자한이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은 뭄타즈 마할이 유일했다.

그들은 무굴제국 곳곳을 같이 여행했는데 전쟁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술이 얼마나 좋았던지 17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두 사람 사이엔 14명의 자식이 있었다.

몸타즈 마할은 임신한 몸으로 남편과 함께 출정한 데칸고원의 전쟁터 근처 천막에서

아기를 낳다가 서른아홉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급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에 황제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샤 자한은 하루아침에

머리카락이 백발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아내를 그리워한 황제는 2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고 사후세계에서 재회를 기약했다.

샤 자한은 몸타즈 마할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를 

지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22년간에 걸쳐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이 국가적 대공사에는 막대한 예산과 노동력은 물론이고 각지의 기술자들이 아그라로 모여들었다.

건축가로는 페르시아 출신의 우스타드 이샤와 이란 출신의 이사 칸이 초빙되었다.

동원된 건축가와 인부가 2만 명 정도였고 코끼리도 1000여 마리가 동원되었다.

건축에는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라자스탄에서 수입된

대리석, 청금석, 홍옥석, 공작석, 터키석 등의 석재를 사용하고

외벽은 루비. 사파이어, 옥과 같은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500kg 이상의 금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체 비용은 400~500만 루피로 추측이 된다.(요즘 환율로 따지면 약 700억 원 정도) 

타지마할은 궁전도 아니고 50미터짜리 첨탑 네 개가 있지만 모스크도 아니다.

첨탑(미나레트)은 원근법적 효과를 고려해 바깥쪽으로 약간씩 휘게 건축했고 지진이 일어나더라도

가운데 영묘 쪽으로는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높이가 75미터 돔 부분의 무게만 1만 3000톤 이상 나가는 타지마할은 건축 공학의 기적을 이룬 것은 물론

이슬람과 힌두교 문화, 페르시아 문화를 융합한 당대 최고의 예술적인 완성도를 이룩한 건축물이었다.

몸타즈 마할은 한 남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의 증표를 받은 것이다.(다음 백과 참조)

 

인도의 저명한 시인 타고르는 타지마할을 ' 영원의 얼굴 위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라고 했다.

 

 

 

 

 

 

 

 

 

 

 

 

 

 

 

 

 

 

 

 

 

 

 

 

 

 

 

 

 

 

 

 

 

여행 다니며 남편과 같이 찍은 사진은 별로 없는데 이번 여행에는 몇 장 찍었다.

일행이 폰으로 한 방에 멋지게 찍어 준 사진이다. ㅎㅎ

아침에 안개가 심한 듯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하늘이 파랗다.

 

 

 

 

 

 

 

 

 

 

 

 

 

 

 

 

 

 

 

타지마할은 정원의 나무에 이르기까지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도록 설계되었는데

영묘의 석관이 유일하게 대칭을 깨고 있다.

샤 자한은 원래 야 무르강 건너편 타지마할과 마주 볼 수 있는 곳에 검은 대리석으로 된 똑같은 건물을 지을 생각이었으나 

아들 아우랑제브가 그 계획을 취소했다. 대신 그의 아버지 시신을 영묘 중앙에 있는 어머니 석관 왼쪽에 안치를 했다.

보석으로 장식한 화려한 석관이 나란히 놓여 있지만 실제 시신은 훼손될까 봐 지하 납골당에 모셔져 있다.

 

 

 

 

 

 

특히 타지마할 장식은 모자이크의 일종인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또는

콤메소 디 피에 트레 두레’ 기법을 사용해 아름다움을 더한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건축물에서도 볼 수 있는 피에트라 두라 기법은

대리석에 꽃 등의 문양을 판 후 그 홈에 각각 다른 색의 돌이나 준보석을 박아 넣은 것을 말한다.

여러 나라에서 수입된 색색의 돌들이 순백의 대리석과 어우러져 오묘한 빛을 발하며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이 기법으로 주로 꽃을 표현했는데 이는 이슬람에서 동물이나 신상의 조각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야 무르 강 건너 아그라성이 보인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의 완성되기도 전에 아들 아브랑 제브에 의해 유포된 곳이다.

 

 

 

 

 

 

 

 

 

 

 

 

 

 

대리석에다 문양을 판 후 여러 색의 준보석을 박아 넣는 기법으로 만들어 화려하고 오묘한 색이 그대로 남아 있다.

 

 

 

 

 

 

흰 대리석은 시간이나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한 낮 햇볕이 쨍할 때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엄청 큰 벵갈고무나무(반얀트리)

인도 여행 중 많이 보았는데

앙코르 유적지에서 사원을 삼킬 듯 감고 있던 나무도 벵골고무나무라고 하였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