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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5/04 (5)
디카로 바라본 풀꽃세상

시공간이 완전 진공상태가 된 듯5분여 동안 숨소리, 작은 바스락 소리조차들리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ㅎ무슨 소리냐구?어제저녁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던 서울시향 음악회바이올리니스트 닝 펑의 연주.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Prokofiev, Violin Concerto No. 2 in Gminor, Op. 63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곡인데2006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했던가공할 기교의 소유자답게 1721년 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멋지게 연주하였다.앙코르곡으로 타레가의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을 연주하였다.잘 알려진 기타 연주곡인데그 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였다.이 곡 특유의 트레몰로연주법을활로 튕기듯 연주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아주 여린 음까지 뽑아내는데2,000석 관객이 침도 삼키지 않고..

산천재 남명매 덕산의 산천재 앞뜰의 남명매는남명 조식(1501~1572)이 61세 되던 해손수 심은 매화나무로 수령이 450여 년.평생 벼슬과 담을 쌓았던 남명 선생이말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 양성을 위해산천재를 세우면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나무 한 그루를 뜰에 심고 벗을 삼았다고 한다.단성 단속사지의 정당매,남사예담촌의 원정매와 함께'산청 삼매'로 불린다.ㆍㆍ봄 산 어디엔들 아름다운 꽃이 없겠는가내가 여기다 집을 지은 이유는다만 하늘이 가까워서다.빈손으로 왔으니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은하가 십리나 되니 먹고도 남겠네ㆍㆍ산천재 바로 앞에 흐르는 덕천강을은하수로 비유했다.산불로 덕천강의 물을 담아가느라소방헬기가 왔다 갔다마음이 불편했지만 남명매의 매향에 흠뻑 빠졌던 날이다.#덕산산천재남명매#에브리데..

오매불망(五梅不忘)경남의 하회마을로 불리는 남사예담촌에는집집마다 오래 묵은 매화나무. 한두 그루씩없는 집이 없다. 그중에서도하 씨. 정 씨, 최 씨, 이 씨, 박 씨 등 다섯 문중을대표하는 다섯 그루의 매화나무 오매불망은기품이 높아 선비의 품성을 닮았다.오매불망 그 오매불망을 보겠다고얼마 전 미리 식당까지 예약해 두었는데산청에 대형산불이 나서 재난특별지역으로지정되었다는 뉴스다.여행을 취소할까 하고 식당으로 전화했더니그 마을은 다행히 괜찮지만 불안하시면 취소해도 된다는 말에 예약했다가 취소한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생각하니그냥 가겠다고 했다.그런데 재난지역에 가서 꽃놀이라니...무거운 마음을 안고 갔다.가는 길에 저 멀리 산에 연기가 여기저기솟아오르고 소방헬기가 왔다 갔다....불안한 마음으로 도착했는데과..

외도가면 외도한다는데내도가면? ㅋ (아재개그)키 크면 싱겁다는 말이 있다.남편이 그래서 아재개그를 잘하나?ㅋ꽃피는 해안선 내도 트레킹외도보다 거제도 안쪽에 있는 내도섬모양이 거북이 닮았다고'거북섬' '모자섬' 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작은섬이지만 동백나무가 많아동백터널 같은 명품길이다.거제도에서 배로 10분트레킹 총거리 2.6km2시간이면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는 섬이다.#편백숲#대나무숲 #동백숲#헤엄쳐건너도될만한거리에공곶이#에브리데이폰샷 250325거제휴양림에서 일박

등운산 고운사의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완전 소실되었다는 뉴스에 망연자실 너무 안타까웠다.작년 5월18일 갔었는데그 때의 아름다웠던 풍경들이 생각나서 찍어왔던 사진들을 뒤적여 본다.ㅠㆍㆍ681년(신문왕 1)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고운사(高雲寺)라 하였다. 그 후 최치원(崔致遠)이 승려 여지(如智) · 여사(如事)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하고 이를 기념하여 최치원의 자(字)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헌강왕 때는 도선(道詵)이 약사여래석불과 석탑을 안치하였고, 948년 운주(雲住)가 중창하였다.(다음백과)